INTERVIEW
쌈지 천호균 사장님과 정금자 감사님
- 작성일2003.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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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모드 서울 회보에 연재되는 졸업생 탐방 기사를 위해 송파구 방이동 (주)쌈지 사옥을 찾은 날은 하늘이 높아 보이는 맑고 화창한 가을날이었다. 사장실이 있는 6층에 올라가기 위해 한 층 한 층 계단을 올라갈 때마다 층계참에 걸려 있는 설치미술가 이 윰씨의 연작 “사군자 : 매란국죽”이 압도한다. 한 번 보면 잊기 어려운 강렬한 느낌의 흑백 여인은 콘크리트 맨살을 드러낸 벽으로부터 금방이라도 막 튀어나올 것 같다. 회의를 마친 디자이너들이 샘플로 보이는 여러 개의 가방을 짊어지고 사장실을 나갈 때까지 기다리며 앉아있던 방에는 제가끔 개성이 넘치는 의자, 탁자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천편일률적인 럭셔리 컨셉에 점령당한 라이프 스타일 마켓에 슬슬 싫증을 느끼기 시작한 사람이라면, 온갖 종류의 녹색 계열 “빤짝이 천” 옷을 입은 소파에 앉아 잠깐 뿌듯한 향수에 젖어볼 수도 있다. <튀게 옷입기> 예사롭지 않은 차림새는 천호균 사장님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다. 남들은 대개 군복에 물들인 옷들을 우중충하게 입고 다니던 젊은 시절부터 이미 “이 사람 저 사람들의 옷, 심지어 누나들 옷”까지 걸치고 다닐 정도로 결사적으로 “튀려고” 했던 사장님은 요즈음은 <쌤> 브랜드 옷만 입는다. 피팅 모델은 못하지만, 마음만은 <쌤> 세대다. 오랫동안 오누이처럼 함께 사업을 키워온 부인 정금자 감사님은 세 시즌째 쌈지에서 소량 수입하는 일본 브랜드 <에비수> 제품을 착용. <에스모드 출신들의 장단점> 디자이너들은 언제나 현장에 가까와야 한다. 상품이 출시될 때마다 디자이너들이 상품을 고르는 고객과 같은 장소에 있으면서 고객들의 반응을 살필 수 있으면 그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요즈음은 인터넷 덕분에 비교적 짧은 시간에 여러 곳에 퍼져 있는 고객의 반응을 살필 수 있다. 쌈지 스페이스에서의 전위적 미술 전시회, 야외 공연장에서 펼치는 언더그라운드 음악 페스티벌 등도 소비자들의 변화하는 욕구를 읽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준다. 불과 3,4년 동안의 기간 동안에 이루어지는 학교 교육은 “현장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확고하게 심어주는 정도로 만족하는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현장 위주의 중심이 확고하다면, 마음과 머리의 나머지 부분은 오히려 비워두는 편이 훨씬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지극히 작은 부분에 치중함으로써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심어주는 교육보다는 새로운 모든 것에 호기심이 열릴 수 있도록 빈 자리를 남겨두는 편을 선호한다. 아집과 선입견으로 꽉 차있는 디자이너들은 일을 하면 할수록 회사에 누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어차피 아주 천재적인 극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디자이너들은 경력이 10년 이상 넘어가게 되면 MD로 방향을 선회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현장 감각은 정말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에스모드 출신들은 현장에 잘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본다. 중심이 잘 잡힌 디자이너라면 윗사람이 크게 간섭하지 않고 자유롭게 일하도록 해주어도 스스로 할 일을 잘 알아서 책임감 있게 임무를 완수할 수 있다. 가죽 가방을 만들어 파는 (주)쌈지를 창립한 이래 줄곧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해온 것이 결과적으로 색깔있는 회사로서의 이미지를 심어주는데 주효했는데, 학교도 자기만의 고유한 색깔을 지녀야 한다. 요즈음 대학들은 그다지 각자 색깔이 뚜렷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점점 더 보수적인 성향을 띄어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에스모드는 확실한 색깔을 가진 교육기관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개성 있는 색깔을 갖춘 다음에는 그 색깔이 현장의 트렌드와 단절되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시인 경영> 아들의 결혼식장에 너무나 “튀는” 차림으로 등장해서, 디자이너 박윤정씨가 디자인한 독특한 의상을 갖춰 입은 신랑만큼이나 하객들의 시선을 모았던 천호균 사장은 그 날 결혼식의 주례까지 맡음으로써 또 한번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소박한 시인" 아버지는 “영화로 대박을 터뜨릴 수도 있는“ 아들과 며느리에게 시인다운 마음을 전했다. <착하게 살자 캠페인> 쌤 브랜드에서 상품을 구입하면 새빨간 비닐 가방에 담아준다. 가방 위쪽 한 구석에는 “착하게 살자”라는 문구가 약간 삐뚤어져 보이는 명조체의 분홍색 글씨로 적혀있다. 지극히 쌈지답지만 한편으로는 상당히 “촌티”가 나는 것 같기도 한 이 가방을 들고 다니는 신세대들이 예상보다 무척 자주 눈에 띈다. 신세대 취향에 잘 들어맞는 가방이었던 것이다. 시인 사장님의 싯구였을까 ? 착하지 않은 세상을 “착하게 살자“는 쌈지의 캠페인 구호는 그 구호가 적힌 가방을 들고 다니는 사람의 마음에 어느 정도까지 와 닿을까 ? 지난 10월 초 한 대학의 노천극장에서 열린 쌈지 주최 음악 페스티발 포스터, 인사동 쌈지 골목 프로젝트 공사장 벽화에도 등장하는 “첫사랑은 끈질기게 끝까지 하자” 쌈지의 또다른 구호 역시 “사랑은 움직이는 거”라고 알고 있는 신세대들에게는 상당히 이질감을 유발할 수도 있지만, 이 모든 구호들이 “재미”라는 공통점으로 엮어진다면서 사장님은 하하 웃는다. <이태리에는 구찌가 있고 한국에는 쌈지가 있다> 세계화가 가속화되는 풍토 속에서는 순리라거나 보편성이라는 개념이 훨씬 설득력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 하는 작업을 존중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좋아하는 감정으로 변화할 수 있으며, 이런 상태에서는 토종이냐 수입이냐의 구분은 커다란 의미가 없어진다. 토종 브랜드 쌈지와 수입 브랜드 안나 수이, 쌈지가 투자한 프랑스 브랜드 마틴 싯봉의 관계가 그러하다. <하고 싶은 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 쌈지는 이외에도 인사동 골목 프로젝트, 파주 헤이리 건축 프로젝트 등 최근 문화계의 가장 큰 이슈가 되는 여러 프로젝트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당분간은 더 욕심껏 새로운 일을 벌이기보다는 시작해 놓은 일들을 마무리하는데 주력하고자 한다. 어떻게 보면 하고 싶은 일을 무작정 하는 것 보다 하고 싶은 일 중에서 상당 부분을 꾹 참고 하지 않았을 때 사업이 성공하는 것 같기도 하다. 골프를 몹시 좋아해서 골프웨어도 해보고 싶지만 하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해서 참은 것이 그 좋은 예라고 정금자 감사님은 말한다. 하긴, 초현대식 건물 속에 골목을 담게 될 인사동 쌈지 골목, 그동안 수집한 미술품을 전시할 공간까지 갖춘 파주 헤이리 단지의 딸기 매니아 테마파크 “딸기밭”(가칭)만 문을 열어도 수도권에는 두 개의 명소가 보태지는 셈이니, 그것만으로도 당분간은 충분할 듯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