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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에스모드 일본 Franck JOSSEAUME 아트디렉터를 만나다

  • 작성일2006.12.06
  • 조회수7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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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2일, 에스모드 일본 프랑크 조솜(Franck JOSSEAUME) 아트디렉터가 에스모드 인터내셔널 니노 사토루(NINO Satoru) 회장과 함께 본교 제 16회 졸업작품 심사를 위해 방한했다.

조솜 디렉터는 1993년 에스모드 파리를 졸업하고 Balenciaga, Balman 같은 꾸뛰르 브랜드와 Bisou Bisou, Ted Lapidus 등의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경력을 쌓았다. 1996년 일본으로 건너가 란제리, 웨딩드레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다가 2001년 Street Couture를 컨셉으로 한 자신의 브랜드 ‘Heart Attack’을 런칭했다. 조솜 디렉터는 에스모드 도쿄와 에스모드 오사카의 아트 디렉터로 일하면서 꾸준히 자신의 이름으로 도쿄 컬렉션에 참가하고 있으며, 일본에서는 톱스타들의 의상 디자이너로 잘 알려져 있다.

30분간의 짧은 인터뷰 동안 그가 얘기했던 패션에 대한 철학과 디자인에 대한 열정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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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93년에 에스모드 파리를 졸업했다면 비교적 늦게 패션 공부를 시작한 편인데, 어떻게 패션에 입문하게 되었나?

어머니께서 그르노블에서 텍스타일 상점을 하셨다. 시즌마다 새로 나온 소재 샘플들을 펴놓고 어떤 컬렉션을 구입해야 할지 고민하실 때 어머니께선 항상 내 의견을 물어보셨다. 열 두 살 꼬마가 뭘 알았겠냐만은 어머니는 항상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소재를 구입하셔서 매장에 비치하시곤 하셨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패션은 내 삶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들어왔던 것 같다.

스무 살에 독립해 내 이름을 건 텍스타일 상점을 열었고, 그러면서 본격적으로 패션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스물 다섯 살에 에스모드 파리에 입학했다.

Q : 직접 텍스타일 상점을 운영한 경력도 있고, 또 다른 학생들보다는 나이가 많았으니 아무래도 디자인의 바탕이 되는 문화적 경험도 풍부하고, 패션에 대한 이해도 상대적으로 높았으리라 생각된다. 실제로도 정말 뛰어난 학생이었나?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입학한 어린 학생들에 비해 사고나 행동이 성숙했던 건 당연한 얘기다. 또 단순히 ‘한번 해보자’는 식이 아니라, 패션디자이너를 내 삶의 목표로 정한 상태에서 공부했으니 결과도 그만큼 좋았다.

그렇다. 실제로 에스모드 파리에서 아주 훌륭한 학생이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다. 3년 동안 내가 응모했던 모든 컨테스트에서 1등을 거의 놓치지 않았다. 프랑스에서 가장 권위있는 자수 업체인 르사쥬(Lesage) 컨테스트, 스위스 레이스 컨테스트, 웨딩드레스 디자인 컨테스트, 란제리 디자인 컨테스트와 디나르(Dinard) 국제 청년 디자이너 페스티벌에서 모두 대상을 받았다. 3학년때는 오뜨 꾸뛰르를 전공했고, 오뜨 꾸뛰르 부문 1등상을 받으며 졸업했다. 이만하면 꽤 훌륭한 학생 아닌가?

Q : 96년에 일본으로 건너갔으니 올해까지 만 10년 째 일본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셈이다. 왜 일본이었나?

에스모드 파리를 졸업하고 3년간 파리에서 일하면서 일본의 패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0년 전, 일본에서는 유명 디자인을 카피해 거기에 일본의 패션 요소를 믹스하는 것이 상당히 유행이었다. 유럽의 유명 브랜드 디자인을 베낀 것 같으면서도 또 그들만의 고유한 디자인이 돋보이는 의상에 크게 매료되어 난 일본으로 건너갔고, 일본인들의 자유로운 패션 감각을 보고 ‘내 디자인은 유럽에서보다 오히려 일본에서 더욱 인정 받을 수 있겠다’ 싶었다.

게다가 패션에 관한 한 일본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한겨울에 민소매에 초미니스커트만 입고 다녀도 아무도 그걸 이상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파리에서 얼굴보다 더 큰 꽃 장식을 머리에 꽂고, 만화 주인공의 옷을 만들어 입고 다닌다면 바로 이상한 사람 취급을 당할 것이다. 남과 똑같이 입으려는 경향이 강한 서울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보장된 표현의 자유, 이것이 내가 일본을 기반으로 패션 디자인을 하는 이유다.

Q : 패션 디자이너를 직업으로 삼고 오랫동안 패션업계에 종사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의상이 밥벌이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디자인 작업은 단조로운 일상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당신에게 ‘옷’은 과연 무엇인가?

옷은 살아있는 유기체라고 생각한다. 단지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이 아니라 실제로 모든 의상에는 그 나름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디자이너는 그 의상에 혼을 불어넣는 신성한 창조자이다.

Q : 우리가 입는 옷에 영혼이 깃들었다고 생각하니 약간 무섭다. 옷마다 영혼과 에너지가 모두 다름을 실제로 느끼는 당신은 도대체 옷을 어떻게 고르며, 어떤 옷을 입는가? 

누구나 옷장 앞에서 그 날의 자신의 감정상태와 몸 상태에 가장 적합한 의상을 자연스럽게 고르게 되지 않나? 그것이 바로 옷이 가진 에너지를 느낀다는 증거이다.

나는 다른 사람에 비해 감정의 기복이 매우 심한 편인데 내 주변 사람들은 내 상태를 내가 입은 옷으로 읽어내곤 한다. 얼마 전에는 너무 우울해서 말하기조차 싫더라. 수업시간에도 반드시 필요한 말만 했고 3주 내내 검은색 옷만 입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어느 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즐겁고 유쾌해졌다. 물론 학생들은 내가 입은 핑크색 재킷과 노란색 바지를 보고 내가 우울모드에서 헤어나왔음을 바로 알아챘다.

Q : 당신이 왜 패션에 있어 극도의 표현의 자유가 허용되는 일본을 선택해 사는지 대충 알것 같다.

날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 개인적으로는 감정의 고저가 크면 클수록 아티스트는 더 독창적인 것을, 더 수월하게 창작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맹숭맹숭한 아티스트는 별 매력이 없다. 덥고 춥고가 확실한 디자이너, 열정이 가득한 디자이너가 되어야 한다.

Q : ‘열정이 가득한’ 당신이 만들어낸 ‘영혼이 깃든 옷’들이 정말 궁금하다. 런칭했던 브랜드와 컬렉션을 소개해달라.

2001년에 일본에서 ‘Heart Attack’이란 브랜드를 런칭했다. 이 이름으로 ‘Before-After’, ‘Art Visual Collection’, ‘Love & Star’, ‘Le Bal du debutant’ 등의 타이틀 아래 총 10차례에 걸쳐 도쿄 컬렉션에 참가했다. ‘Street Couture’를 컨셉으로 한 ‘Heart Attack’은 시부야 거리의 트렌디한 매장으로 패션니스트들에게 꽤나 유명했다.

근데 어느 순간, 브랜드 명이 아닌 내 이름을 걸고 디자인을 하고 싶어졌다. 작년부터 ‘Heart Attack’을 접고 ‘Franck Josseaume’이란 이름으로 컬렉션을 시작했으며, 작년엔 파리 컬렉션에 참가했다. 꾸뛰르적이면서 동시에 펑키하고 아방가르드한 컨셉에는 변함이 없다. 패션 기자들이 내 옷을 일본과 프랑스의 요소가 한데 결합된 독특한 디자인으로 평가하더라.

Q : 일반적인 기성복 디자인이 아닌 란제리, 웨딩드레스 분야에서의 경력을 많이 갖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에스모드 파리에서 ‘Haute Couture’를 전공한 것과, ‘Heart Attack’의 컨셉이 ‘Street Couture’인 것도 모두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 같은데… 당신의 디자인 철학을 ‘Couture’로 요약해도 되는가?

패션공부를 처음 시작하면서부터 난 기성복이나 캐주얼 쪽에는 관심이 없었다. 아동이나 남성을 위한 옷을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예술적 영감으로 가득한 여성의 몸을 위한 옷을 만들고 싶었으며, 여성을 통해 예술과 시간, 사랑, 꿈, 역사 등을 얘기하고 싶었다. ‘신비롭고 감각적이고 이국적인 매력이 풍기는 여성을 위한 옷’, 혹은 그렇지 못한 여성을 ‘가장 섹시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마술 같은 힘을 가진 옷’을 만드는 것이 내 목표였고, 그에 가장 부합하는 것이 바로 꾸뛰르라고 생각한다.

나는 모든 여성이 부담없이 입을 수 있는 평범한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가 아닌, 꿈 속에서 그려왔던 환상적인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로 불리고 싶다. 모든 여성이 어렸을 때부터 꿈꾸어온, 평생 한 번 입게 되는 웨딩 드레스 디자이너로 일한 것도 그런 이유이다. 란제리 역시 오뜨 꾸뛰르적인 테크닉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에서, 또한 여성의 몸을 가장 여성답게 변화시킨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그런 점에서 내 디자인 철학은 ‘Fantaisie(환상)’과 ‘Transformation(변화)’이라는 단어로 요약될 수 있겠다.

Q : 옷과 패션에 대한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평범한 여성(‘femme’)을 신비롭고 아름다운 여성(‘Femme’)으로 변화시키는 패션 디자이너가 마치 의사나 마술사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당신이 디자인한 옷을 가지고 변모에 성공한 여성이 실제로도 정말 있었나?

물론이다. 최근에 아는 사람의 소개로 일본 대기업에 다니던 한 여성의 패션을 컨설팅한 적이 있었는데, 첫인상부터 그녀에게선 뭔가 우울하고 쳐진 느낌이 들었다. 난 일단 가위를 들고 그녀의 머리를 잘랐다. (참고로 난 의상 디자인 뿐만 아니라 메이크업, 헤어 연출까지 직접 한다. 진정한 ‘변화’를 꾀하려면 패션뿐만 아니라 헤어와 메이크업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그녀의 속옷부터 시작해 직장에서 입을 옷들, 백, 쥬얼리까지 모두 골라주었고, 2주 후에 그녀에게서 팀장으로 승진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look’이 달라지면 나의 행동과 말투 등의 총체적인 ‘attitude’도 바뀌게 마련이고, 따라서 나에 대한 사람들의 인상과 평가 또한 달라진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외모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주는 지표이자 능력이다. 그리고 내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사람임에 자부심을 느낀다.

Q : 인터넷을 찾아보니까 일본의 유명 연예인들의 옷도 디자인하는 것 같던데…

그렇다. 좀 전에 설명한대로 내가 꾸뛰르를 좋아하는 이유도 그것이 평범한 모든 여성을 대상으로 하지 않기 때문이고, 그런 맥락에서 난 예외적이고 특별한 사람인 스타들의 의상 디자인 작업을 즐긴다. 구찌, 맥퀸, 갈리아노 등 세계적인 디자이너의 런웨이 모델인 ‘아이 토미나가(Ai Tominaga)’의 옷과 일본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여자 수퍼 아이돌 그룹인 ‘모닝구 무스메(Morning Mousme)’의 의상을 디자인했다. 고객 중에 영화배우나 가수들이 많은 편이다.

Q : 이제는 패션 디자이너가 아닌, 에스모드 일본의 아트 디렉터로서의 얘기를 듣고싶다. 학교에서 아트 디렉터로서 어떤 일을 하고 있나? 스틸리즘 수업 등을 직접 하지는 않는 건가?

아트 디렉터가 되기 전까지는 스틸리즘 교수로 에스모드 도쿄와 오사카에서 수업을 했지만, 이제는 따로 수업을 하진 않는다. 대신 나는 에스모드 일본의 모든 학생들과 정기적인 미팅을 갖는다. 학생들의 작업 진행상황을 체크하고 ‘univers personnel’에 대해 설명을 듣고 조언을 해주며, 특히 3학년이 되면 졸업작품 컬렉션에 관한 A부터 Z까지 나와 상의해 결정하게 된다. 담당 스틸리즘 교수와는 달리, 학생에 대한 정보가 없는 상태로 오직 결과만을 가지고 평가하고 조언한다. 모든 학생을 만나야 하기 때문에 고도의 집중력을 가지고 각 학생의 디자인 세계로 금새 몰입했다가 또 빨리 빠져나와야 한다. 그래서 이 일은 상당히 힘들다.

학생들의 컬렉션 주제를 잡는 일 외에도 에스모드 일본에서의 내 역할은 한 마디로 ‘학생 작품을 돋보이게 하는 모든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카탈로그 제작, 매해 졸업작품 발표회의 형식과 주제 결정, 패션쇼 연출 등이 되겠다.

Q : 광고 분야가 아닌 패션쪽에서의 ‘아트 디렉터’ 포지션은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생소한 편이다. ‘아트 디렉터’를 좀 더 구체적으로 정의해 달라.

디자이너들이 각자가 맡은 일에 너무 충실하다 보면 큰 그림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아트 디렉터는 큰 숲을 보고 그 플랜에 따라 모든 포지션의 사람들에게 방향을 제시하고 지휘하고 종합하여 목적에 가장 알맞은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다.

Q : 앞으로 한국에도 패션회사에서 뿐만 아니라 관련 업계에서 아트 디렉터의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아트 디렉터가 되려면 어떤 자질이 필요한가?

아트 디렉터는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넘치는 크리에이티브한 사람, 변화를 좋아하는 진취적인 사람이어야 한다. 또한 여러 포지션의 사람들을 대해야 하기 때문에 외향적이어야 하고, 커뮤니케이션 능력 또한 뛰어나야 한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 ‘열린 귀’를 가짐과 동시에, 디렉터로서 따끔한 지적을 할 수 있는 ‘미간을 찡그릴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Q : 에스모드 서울에는 처음 방문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 16회 졸업작품 전시회 ‘Shop in Shop’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소감을 말해달라.

국제 분교장 회의에서 에스모드 서울 학생들의 작품을 본 적이 있고, 사진 등을 통해 한국 학생들의 높은 수준에 대해서 익히 알고 있었지만 직접 보니 정말 훌륭했다. 특히 현재 트렌드를 충실히 반영하면서 아방가르드한 디자인을 적절히 매치한 것이 돋보였으며, 다양한 소재를 믹스하는 능력과 소재개발 테크닉에 있어서는 에스모드 전 분교에서 서울을 따를 분교가 없을 듯 하다. 전시 방법이나 음악, 조명 역시 학생들의 작품을 차별없이 모두 잘 보이도록 하는데 손색이 없었고, ‘살롱’이라는 전시 컨셉에 따라 실제 브랜드에서처럼 카탈로그와 가격표, 브랜드 네임택을 제작한 것이 특히 좋았다.

아쉬운 점은 전체적으로 블랙, 그레이, 화이트 등의 무채색 컬렉션이 다소 많았다는 것과 학생들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몇 개의 작품에서 모두 보여주려 하다 보니 디테일이 과하게 들어갔다는 것이다. 에스모드 서울 학생들의 넘치는 아이디어와 창작욕구 때문이었겠지만, 너무 많은 디테일이 들어간 작품보다는 한가지 컨셉의 일관성있는, 심플한 디자인에 더욱 눈길이 가기 마련이다.

어쨌든 전체적으로 바로 상점에 내놓아도 팔릴만한 훌륭한 작품이 많았으며, 한 가지에 치중하지 않고 여러가지 아이템을 구비하여 크로스 코디가 가능한 ‘온전한 컬렉션’이 되도록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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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작품 세계와 패션 철학에 대해 30분간 쉬지않고 열정적으로 설명해준 프랑크 조솜 아트 디렉터는 인터뷰 말미에 후세인 샬라얀(Hussein Chalayan)의 2007 S/S 컬렉션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그는 쇼 마지막에 등장한 ‘오토매틱 드레스’를 보고 소름이 돋을 정도로 흥분했었다며, 조만간 전세계 패션은 ‘Futuristic’, ‘Technology’, ‘새로운 소재’와 ‘새로운 볼륨’ 등 미래 지향적인 주제를 중심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그 쇼를 보고 나서 내년 에스모드 일본 졸업작품전의 주제를 ‘Futuristic’으로 정했으며, 이를 위해 요즘 로보트, SF, 하이엔드 테크놀로지와 초현실주의에 대해 계속 공부 중이라는 조솜 디렉터.

그가 말한대로 프랑크 조솜 디렉터는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며, ‘옷에 영혼을 불어넣기 위해 노력하는’ 열정적인 디자이너의 원형(Prototype)이 아닐까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