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ORT
그의 데님은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는 것 같았다...
- 작성일2004.05.11
- 조회수6929
내가 이진윤이라는 디자이너를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 때이다
그때 신문의 한 문화면에서 읽었던 디자이너 이진윤의 기사는 대중적인 데님소재로
화려하고 섹시한 파티웨어를 선보여 국내는 물론 해외 바이어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엄청난 수입을 올렸다... 라는 내용의 기사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 이진윤은
국민대 의상디자인과 4학년이었고 그 때문에 아직도 학생디자이너라고 불린다고 한다.
이진윤의 무대는 다른 디자이너의 무대보다 두배는 넓고 낮은 무대가 눈길을 끌었다.
깨끗하고 순수한 이미지의 화이트 무대 위로 얼음처럼 굳어버린 표정의 모델들이
하나 둘씩등장했다. 이번 시즌 그가 선택한 뮤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라고
하는데 미를 상징하는 측면에서의 모나리자를 담은 것이 아니라 모나리자의 얼굴에서
서로 다른 이미지의 혼재 즉 페티시즘과 퓨어리즘 사이의 컨트라스트를 발견한 것이라고
한다. 쇼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지는 못했지만 나중에 패션인사이트를 보고 나름대로
이해하게 되었다.
남성인지 여성인지 아니면 웃는 얼굴인지 화난 얼굴인지의 경계가 모호한 모나리자의
모습에서 상반된 이미지의 균형감을 찾아 폐쇄와 오프닝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모델의 메이크업과 헤어스타일에서
엿볼 수 있었다. 석고상처럼 차갑고 하얗게 화장을 한 채 표정없는 모델들이 하나 둘씩
걸어나오고 그에 상반된 정수리 위로 치켜올려진 검은 머리는 블랙과 화이트에서
컨트라스트의 매우 강렬한 이미지를 풍겼다.
계속해서 그는 퇴폐적인 여성을 표현하는데 있어 늘 공존하는 테마인 섹시함과
순수함을 지닌 디자이너의 시각으로 균형감있게 강조해 나갔다. 또한 인체를 억압하는
형태의 코르셋 라인에서 출발한 페티시즘적인 디자인은 트렌디한 스포티즘과
접목되기도 했다. 특히 트레이닝룩으로 대변되는 스포티즘에서 벗어나 스탑퍼, 벨크로
테이프, 단면고무밴드등으로 신선한 변화를 추구하기도 했다.
그의 데님은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는 것 같았다. 거칠고 두꺼운 데님소재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여러 차례 워싱하고 디테일과 패턴작업까지 모두 디자이너의
손을 거쳐 태어난 작품에서 그의 열정이 느껴지는 듯 했다. 정말 아름다운 옷이었다.
나는 쇼가 시작해서 끝나는 시간 내내 어떻게 데님을 저렇게 아름답게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만 했던 것 같다.
데님으로 온몸을 감싸고 발아래까지 흘러내리고 소매가 무릎까지 늘어지게 길어도
전혀 무거워 보이지 않고 무겁다고 느껴지지 않았던 건 아마도 그가 특별히 신경써서
한 워싱 가공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디자이너라면 그 정도의 열정은 꼭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자신의 생각을 얼마만큼 완벽하게 옷에 옮겨 그 옷을 보고 입는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잘 전달 할 수 있나 하는 것도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짧지만 길었던 쇼가 끝나고 피날레 무대에서 당당하게 걸러나온 이진윤은 많은
선배 디자이너와 패션 관계자, 관객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듯 정중히 인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첫 무대이기에 미흡한 점이 많아 못내 서운하다는 그는 컬렉션이
끝나고 흥분과 벅차 오르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부디 그 눈물의 의미를 오랫동안 간직하고 늘 끊임없는 연구와 새로운 것에 대한
시도에 정진하기를 바라고 또 앞으로 그의 아름다운 데님 옷들을 볼 기회가 더 많아지길
바란다. 내년이면 더 기발하고 신선한 옷들로 나와 그의 옷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리라 굳게 믿는다.
나도 언젠가 나의 쇼를 보고 누군가가 이렇게 감상문을 써줄 날을 생각해보니
벌써부터 흥분되고 기분이 좋아진다. 그때가 되어 내가 만든 옷들을 남들 앞에 당당하게
보여주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좀더 배우고 생각하는 능력을 키우고 더 많은 열정을
가지고 내 개성을 키워나가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진윤의 쇼는 나에게 이런 여러가지 생각을 해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훌륭한 옷, 훌륭한 무대 그리고 훌륭한 디자이너라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