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파리 패션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 작성일2006.09.01
- 조회수7175
다음은 살롱 등의 전시회를 통해 디자인과 상품성을 검증받는 ‘파리 패션산업’에 관해 이상봉 선생님께서 쓰신 기사입니다.
올 2월 열린 파리 프레타 포르테 컬렉션 이후 이상봉 선생님께서는 한글을 모티브로 한 의상을 지속적으로 선보이고 있으며, 한불수교 120주년을 맞아 9월 1일부터 4일까지 파리 ‘후즈넥스트’에서 프랑스 디자이너들과 함께 한글을 주제로 한 패션 전시회를 기획하기도 하셨습니다.
[사진은 지난 2월 파리 프레타 포르테 살롱 전시장과 '아트모스피어' 관의 이상봉 부스 모습]
파리 패션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작년 9월 ‘한국 프랑스 120주년”행사 준비와 관련해 파리 의상 조합 협회의 디디에 그랑박(Didier Grumbach)을 만나 회의를 하면서 그랑박 회장이 했던 말이 오랫동안 잔영처럼 남았다.
“팔리지 않는 옷은 죽은 옷이다”.
파리는 패션 세계에서 디자이너의 창조성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패션의 도시라는 상징성이 있지만, 아무리 뛰어난 창의성을 발휘하더라도 상업적으로 팔리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일반인들에게 프레타 포르테 컬렉션(Pret-a-porter Collection) 의 화려한 패션쇼 무대가 파리 패션의 전부로 보이지만 이러한 화려한 패션쇼를 할 수 있는 디자이너들이란 파리 의상 조합에서 선정한 100여명의 디자이너에게만 한정되어있다.
파리를 이끄는 또 한 가지의 축은 이러한 화려한 패션쇼 외에 ‘파리 프레타 포르테 살롱(Paris Pret-a-porter Salon)’이라 불리는 전시회, 트레이드쇼가 있다. 또한 파리 프레타 포르테 살롱의 경우, 유럽은 물론 세계 각국의 유명 디자이너와 브랜드를 총집결시키는 점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전시회라고 부를 수 있다.
프레타 포르테 살롱은 현재 내가 10년동안 참가해왔는데, 4개의 특징이 다른 존(zone)으로 구분이 된다. 그중 아트모스피어(Atmosphere)는 프레타 포르테 살롱의 얼굴이라 불리우고 심사 또한 까다롭다고 할 수 있다.
1,000여개의 브랜드와 디자이너가 일년에 두번씩, 1월말과 9월초에 있는 전시회를 위해 샘플을 만들고 4일에 걸쳐 전세계에서 몰려온 바이어들을 상대로 옷을 판매한다. 바이어들은 도매상(홀세일러)이 아닌 직접 소매상을 운영하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소매상 중에는 100여개의 브랜드를 동시에 취급하는 대형 멀티샵의 바이어들도 있지만, 작은 바이어의 경우 오퍼하는 수량이 한 디자인에 사이즈별로 하나씩 오더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수년전 같이 전시회에 참가했던 디자이너 박춘무씨와 ‘비내리는 오더장’이라며 크게 웃었던 기억도 있다. 어찌보면 슬픈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이런 오더장 하나 하나가 내가 파리에 도전하는 큰 의미이자 자산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파리에는 이러한 프레타 포르테 살롱 전시 외에 후즈넥스트(프레타 포르테 보다 좀 더 젊은, 트렌디한 전시회), 프레미에르 클라쓰(액세세리 전문 전시회)가 있고 ‘트라노이’와 같은 작은 전시회도 여러 개 있다. 유럽으로 확대하면 이태리 밀라노의 ‘화이트’ 전시, 독일의 뒤셀도르프 전시회, 요즘 떠오르는 BBB(Bread & Butter in Berlin, in Barcelona라는 전시회이며, 젊고 캐쥬얼한 전시회임), 영국의 MODA UK, 뉴욕의 코테리, 트레인, 모스크바, 도쿄, 상파울로등의 크고 작은 전시회등이 정기적으로 있다.
또한 올해는 ‘한국 프랑스 수교 120주년’을 기념하여, ‘후즈 넥스트’에서 ‘한글 패션 특별 전시’가 있을 예정이다. ‘후즈 넥스트’의 마케팅 이사 ‘패트리시아 르하(Patricia Lerat)’는 프랑스 대사관 오현숙 경제 상무관에게 작년에 소개를 받았는데, ‘한불 120주년’을 기념하여 프랑스 디자이너 40여명에게 한글 원단을 나눠주고 한글 기성복과 액세세리를 만들어 전시를 하자는 제안에 뜻을 같이 하게 되었다.
이러한 일에는 우선 서예가 조성주 선생님이 유려한 한글 글씨를 제공해주시고, 수백미터의 실크 원단의 경우, ‘세마실크’라는 업체의 협찬이 있어서 가능했다. 이러한 한글을 원단에 디자인해 2개월에 전에 파리로 보낸 상태이다.우리나라에서는 내가 두 벌의 의상을 제작하여 보냈는데, 프랑스 디자이너들이 본 한글 원단이 어떻게 옷과 액세세로 표현될지 궁금하기도 하다. 이렇게 패션 전시회가 보편화된 유럽과는 달리 한국에는 이러한 전문 패션 전시회가 없어 아쉽기도 하다.
작년 7월에는 베를린 에스모드 졸업식의 심사위원으로 초청을 받았는데, 베를린 에스모드 학생들의 졸업과정이 한국과는 사뭇 달라 신선하였다. 졸업생들은 마지막 학기 졸업을 위해 자신만의 테마와 모티브, 철학 아래 브랜드를 런칭하는 식으로 컬렉션을 준비하고, 지정된 부스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과장이 영락없이 패션 전시회를 보는 듯 했다. 심사위원들은 졸업생들의 옷 자체와 컬렉션 구성력의 창의성/상업성의 모든 것은 평가하는 것은 물론, 부스의 디스플레이 방식이 컬렉션의 컨셉과 얼마나 동일한지 검증한다.
90년대 중반부터 두각을 나타나기 시작해 이제 파리 패션를 대표하는 ‘존 갈리아노’와 ‘알렉산더 맥퀸’의 경우, 영국 세인트 마틴 졸업작품들을 유명멀티샵에 판매했다는 것은 이미 패션계의 유명한 일화 중의 하나이다. 외국의 경우, 이렇게 디자이너를 꿈꾸는 학생들이 처음에 현실 세계, 비즈니스의 세계와 부딪히는 장소가 전시회 참가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전시회 참가를 통해 자신의 디자인 철학과 상품성을 바이어에게 검증받기 때문이다. 수년간 이러한 전시회를 참가하며 내공을 쌓고, 좋은 편집 매장을 고객으로 만들면서 능력을 검증받고 패션쇼로 데뷰하는 것이 유럽 패션계의 일반적인 룰이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패션협회의 전시회가 없어져 버린 건 안타까운 일이라 할 수 있겠다. 외국과 우리나라의 유통 구조의 차이 때문이겠지만, 패션의 가장 중요한 시장인 전시회를 모르고 졸업하는 한국 학생들이 오직 화려한 패션쇼만 보고 느끼며, 그 뒤에 일어나는 전쟁과 같은 비즈니스의 세계를 지나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국의 패션 학교들도 이제는 패션쇼 보다 전시회 준비를 위한 졸업 발표회를 하는 경우가 많다. 창의성도 중요하지만, 이전에 비즈니스의 감각을 키워야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잘아는 프레타 포르테 패션쇼의 경우도 철저하게 비즈니스 중심이라 볼 수 있다. 크리스티앙 디오르, 샤넬 등과 디자이너 컬렉션이 파리 프레타 포르테 컬렉션을 통해 공개되고 바이어, 언론인, 패션피플 뿐 아니라, 영화, 광고, IT종사자까지 몰려들기 때문에 프레타 포르테 컬렉션은 꿈의 무대라 부를 수 있다.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겉으로 보기 화려한 패션쇼 무대를 내려온 다음부터 본격적인 비즈니스 전쟁이 시작된다. 세계에서 몰려온 바이어들은 패션쇼가 끝나고 자신들이 눈여겨 봤던 디자이너의 쇼룸(showroom : 디자이너의 옷 주문을 받아주는 곳)을 찾아다니며 다음 시즌의 옷들을 주문한다. 컬렉션의 보통 10분 남짓한 쇼를 하기 위해 오랜 시간과 경제적 비용을 투자하기 때문에 바이어로부터 주문을 끌어내지 못하면 몇 시즌을 견디지 못한다.
또한 파리 프레트 포르테 컬렉션 패션쇼는 디자이너로 하여금 일년에 두 번 새로운 작품세계를 꼭 선보이게 만들기에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심하다 할 수 있다. 쇼 이후에는 상업적/예술적 잣대로 철저하게 평가할 뿐만 아니라, 패션쇼를 하다가 한 시즌이라도 쉰다면 ‘저 디자이너는 이제 경쟁에서 밀렸다, 이제 끝났다’고 인식하기에 컬렉션을 계속해서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파리 패션 디자이너들에게 알려진 ‘저널리즘은 돈을 주고 살 수 있지만, 바이어는 돈을 주고 살 수 없다 ‘라는 말은 서두에 파리 의상 조합 협회 회장이 말했던 ‘팔리지 않는 옷은 죽은 옷이다’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고 본다.
한국의 패션 선진화를 위해서는 젊은 디자이너들이 해외 전시회를 통해 세계시장에 대해 끊임없는 도전을 해서 ‘세계속의 한국 패션’의 위상을 확립해주길 바란다.
(이 기사는 연합뉴스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기사보기
☞http://www3.yonhapnews.co.kr/cgi-bin/naver/getnews_new?0520060824037000625 20060830 0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