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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모드 서울에서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소식

REPORT

견문을 넓히기 위해 참가한 중국 콘테스트는...

  • 작성일2004.04.21
  • 조회수6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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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a Cup 콘테스트 참가를 위해 3월 18일, 설레임과 기대감으로 도착한 푸동 공항...
비행기 티켓의 문제로 한시간이 지나서야 협회측 가이드를 만나 호텔로 이동할 수 있었다.
차안에서 본 상하이의 첫 모습은, 우리나라의 70, 80년대를 연상케 했다. 정말 바빠 보이는
사람들의 움직임과 하늘로 치솟는 높은 건물들... 급부상하는 곳이라는 그 말이 실감이 났다.

테스트 일정에 따라 4일 동안, 짜놓은 스케줄에 따라 전공별(여성복, 남성복, 아동복,
란제리)로 움직이게 되었다. 일정표를 받아보니 섬유엑스포 관람, 박물관 관람 등 빡빡한
일정이었다. 나름대로 알차게 구성해 놓은 일정이었으나, 여유 있는 중국인들인지라 정해진
시간에 움직이는 일은 거의 없었다. 더군다나 그 일정표에 따라 움직이는 외국인은 나뿐이라
쓸쓸하기까지 했다. 정말 수다스럽고 시끄러운 중국인들 속에서 난감하긴 했지만 이 자체도
문화고 그들의 생활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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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일은 남성복 쇼가 있는 날이었다. 상하이에서 가장 큰 백화점이라는 Super Brand Mall에서 
대회가 열렸고 아침 일찍부터 참가한 디자이너들과 함께 쇼장으로 이동했다. 특이한 점은,
중국인들은 다들 긴장하는데 나를 포함한 외국인들은 낯선 곳에 대한 설레임으로 구경하기
바빴다는 것이다. 그 양면적인 모습들만 보아도 재미있어 긴장이 풀어지는 듯 했다.

허설이 시작되었다. 내 번호는 27번. 뒷번호라 4시간이 지나서야 피팅을 볼 수 있었다.
중국 모델들이 워낙 키가 커서 바지 길이가 조금씩 짧긴 했지만 별 무리는 없었다. 대신 신발
하나가 사라져 가슴이 철렁했다. 패션협회측의 실수로 번호가 잘못 적혀 빼놓은 것이었다.
중국인들의 느긋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성격 급한 한국 사람으로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또 다시 문제가 발생했다. 모델들이 힘들다며 내가 원하는 연출을
해주지 않는 것이었다. 박박 우겨대는 그들을 설득하다 지쳐 결국은 총감독을 찾아가
부탁을 해서 해결했다.

리허설이 끝나고 바로 심사위원 리허설이 시작되었다. 무대위에서의 내 옷들을 처음
볼 수 있었다. 그때의 감흥은 또다시 느껴보기 힘들 것이다. 만족감과 함께 모든 것이 녹아드는
그 설레임과 뿌듯함을... 또 한번의 백스테이지 심사를 마치고서야 다른 친구들의 옷이 눈에
들어와 유심히 볼 수 있었다.

녁 7시... 중국 전역에 생방송으로 나간다는 본 쇼가 시작되었다. 
옷들의 무대도 지나고...
모두가 만족스럽고... 흡족했다. 그리고 모델들의 연출에 박수를 보냈다. 쇼가 끝나고 바로
있었던 시상식에서 영광스럽게도 특별상과 1등인 금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에 당황하기도 했지만, 내 번호가 불려지고 내 옷을 입은 모델들과 함께 걸어간 무대위에서
느낀 그 감흥은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수많은 카메라의 집중을 받고 방송사, 잡지, 신문
인터뷰 그리고 축하 인사들... 어색하면서도 기쁜 그 순간! 정말 값진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문을 넓히기 위해 참가한 중국 콘테스트는, 중국권을 비롯한 일본, 태국, 영국, 이태리,
캐나다, 루마니아 등 다양한 국적을 가진 외국 사람들을 만나보는 기회도 되었다.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서로의 문화에 대해 설명하고 이해하면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느낀, 내 생애에
있어 가장 행복하고 가치있는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지막으로, 행사내내 우리와 함께 하셨던 ㈜보끄레머천다이징의 이만중 사장님이
에스모드생들의 수상 소식을 접하고 하신 말씀 중에 “세계의 벽이 높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는
말이 가슴속에 남았고, 이런 좋은 결과가 후배들에게도 자신감과 도전의식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을 것으로 믿는다. 더불어, 이런 국제적 규모의 큰 행사에서 다른 나라의 기성 디자이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던 것은 에스모드만의 철저하고도 실무중심적인 교육 덕분이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