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ORT
삼청동 LAMB 디자인실에서의 기업연수
- 작성일2008.01.28
- 조회수8739
빽빽이 들어선 오피스 빌딩과 자동차 매연, 기성품의 숨막히는 파도로 물결치는 대기업과 내셔널 브랜드를 벗어나 삼청동을 찾았다. 무엇보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1년 동안 배운 것들을 마무리할 수 있는 따뜻한 뜨개질 손놀림과 가스 난로가 있는 삼청동 의상실 LAMB의 풍경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태양 아래서 더 이상 새로운 것과 창조성을 찾을 수 없다면 태양 너머를 보라고 하지 않는가. 난 그 태양 너머에 있는 삼청동의 터줏대감 LAMB에서 연수를 하게 되었다.
이미 빛이 바래고 식상해지고 있는 소격동에서 6년간 자리를 지켜온 LAMB은 이탈리아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온 디자이너가 운영하고 있는 여성복 매장이다. 맞춤복을 하고 있고 여러 수작업을 진행하고 있어서 배울 점이 많았다. 우선 영업과 판매는 물론 생산, 수선, 디자인 등에 모두 참여하여 뜻 깊은 2주를 보낼 수 있었다.
1. 첫 번째 손길 – 매장 정리
매일 오전 11시에 출근하면 매장을 정리하고 청소를 했다. 매장 안에서 뜨개질과 바느질, 수작업 등 많은 작업을 하고 있어서 여기저기 먼지나 실밥이 많았다. 우선 매장 안을 깨끗이 청소하는 것을 출발점으로 일을 시작한다. 그러면서 밝은 색 옷이 더러워지지 않게 커버를 씌어 놓는 것도 잊지 않았고 액세서리 진열대도 깨끗이 했다. 액세서리는 blank@와 박지원씨 것만 판매되고 있었다.
2. 두 번째 손길 – 수선
하루에 적어도 두 벌이 새로 들어오는데, 시간을 서둘러 맡기다 보니 스냅단추나 단추, 걸고리 등을 안 달아 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작업지시서에 부자재를 같이 넣어야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임을 알았다. 규모가 크지 않은 매장이라 시간이 빠듯해서 단추를 못 사고 바로 맡기는 경우가 많았다. 한번은 맡긴 후 완성된 옷을 받았는데 뚫어온 단추 구멍이 샵에서 갖고 있던 단추와 크기가 안 맞아 당황한 적도 있다. 그래도 나는 스냅단추를 매듭을 지어가며 바느질하여 다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또 맞춤 손님 한 분이 소매 기장을 줄여달라고 해서 소매 천을 잘라내고 안감도 잘라낸 후 다리미로 다려서 잘 접어 넣고 겉에서 안보이게 바느질 하는 것도 직접 해보았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안감을 다리미로 직접 다리면 안 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샵에서 직접 제작한 치마에 안감 다는 법도 배울 수 있었다. 안감을 단 후 마지막에 깨끗하게 지그재그가 되게 바느질하는 방법도 배웠다.
3. 세 번째 손길 – 구매
일한 첫날부터 나는 광장시장 파견근무를 했다. 먼저 코트 소재에 맞는 안감과 원피스 안감, 코트 안단추, 싸개단추, 원피스 지퍼, 지퍼 슬라이드, 심지 등을 선택하여 샀다. 이때, 패턴이 화려한 원피스에 어울리는 겉으로 나오는 지퍼를 사야 해서 컬러 선택이 힘들었다. 안감과 부자재는 거의 일 주일에 세 번씩 나가서 사왔고 다행이 모두 패스되었다.
한번은 소재시장 조사의 업무를 맡아서 겨울 옷에 어울리는 소재 스와치를 찾아온 적이 있다. 여러 가지 다양하게 찾으려고, 그리고 샵의 분위기에 맞게 찾으려고 애를 썼고 그 중 3 가지 소재는 디자이너가 맘에 들어서 구매를 하고 옷을 만들게 되었다. 내가 찾은 것들은 주로 캐시미어, 알파카, 벨벳, 쉬폰, 울, 체크 등이었다. 한 번은 검은 재킷에 원 버튼으로 달린 40mm 단추를 찾을 일이 있었다. 나는 검은 천으로 장미 모양이 만들어진 단추를 포인트가 될 것 같아서 구매했고 이 단추로 오더가 들어갔다.
4. 네 번째 손길 – 패턴실 파견
처음으로 옷이 만들어지는 사무실을 볼 수 있었고 옷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볼 수 있었다. 샘플 제조 의뢰서나, 가봉할 옷, 빠진 옷감이나 부자재 등을 들고 가서 맡기는 일을 주로 했고 완성된 옷을 찾아오는 일도 자주했다. 여기서 배운 가장 중요한 점은 제조의뢰서를 잘 써야 한다는 점과 옷을 제작하는 쪽에서 제조의뢰서를 꼼꼼히 안 볼 수도 있다는 점, 디자이너와 패터너의 커뮤니케이션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옷을 받으면 바로 꼼꼼히 확인해야 된다는 점도 배웠다. 아웃소싱이란 것은 매우 까다로운 일이었다. 단추 구멍이 잘못 되어 나오는 경우, 천이 두꺼운 것을 생각하고 만들지 않아서 소매통이 너무 좁게 나오거나 치마통이 작게 나오는 경우 등을 볼 수 있었다. 접는 카라에 단추가 잘못 달려 나오는 경우도 볼 수 있었다. 디자이너는 디자인을 한 후 아웃소싱을 할 때, 작업지시서를 꼼꼼히 기재하고, 패터너에게 의사전달을 확실히 할 수 있어야 한다.
5. 다섯 번째 손길 - 제조 의뢰서 작성
원피스를 가봉한 후 맡긴 제조의뢰서에는 다음 같은 새로운 항목이 기재되었다. 가슴 주머니 달기, 암홀 넓힘, 품 넓힘, 벨트 내림, 목에 흰색 탈부착 칼라 만들기. 이 원피스를 맞춘 손님이 체격이 있었기 때문에 패턴 사이즈와 디자인도 함께 변화가 있었다. 살짝 뚱뚱한 노부인의 경우 허리가 38인치, hip이 42인치 정도 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번 Who’s next에 참가했던 옷으로 벨벳 원피스도 있었는데, 한국에서는 한국인의 정서와 취향에 맞게 다시 디자인해야 했다. 원래는 어깨에 쉬폰으로 장식이 화려하게 되어있었는데 한국인이 소비자이기 때문에 제조의뢰서에서 과감하게 어깨 쉬폰 장식을 빼버렸다.
한번은, 44사이즈 여성이 블라우스를 맞춘 적도 있다. 44 사이즈의 경우 어깨는 14인치, 가슴은 31~32, 허리는 24, hip은 35, 암홀은 15, 소매기장은 22인치 정도 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소매가 예쁘게 떨어지는 블라우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팔꿈치 부분이 살짝 곡으로 파이게 패턴을 구성해야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 분의 몸 사이즈를 잰 후, 작업지시서에 사이즈를 상세히 적고, 패턴을 고치고, 단추를 동봉하여 아웃소싱을 했다.
또 중요한 점은 많은 작업지시서를 정리해 두는 태도였다. 디자이너 자신의 스타일에 따라, 아이템별/ 시즌별/ 맞춤별 구분이 명확하게 정리해 두는 일이 중요하다. 작업지시서가 분실되지 않게, 나중에 찾을 때 힘들지 않게 말이다.
겨울이라 코트를 맞추는 경우도 많았는데 주로 블랙 소재를 선호했고 춥기 때문에 목을 1cm 높이고, 기장은 2인치 늘이고, 소매를 1인치 크게 하고, 아웃포켓을 안주머니로 바꾸는 등의 다양한 요구가 있었다.
작업 지시서를 작성할 시에는 치수를 모두 기재하고 부자재, 심지, 안감을 표시하고, 날짜를 쓰고, 소재를 붙일 때 소재명도 적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도식화 역시 밸런스에 맞게 그리는 연습을 몇 번 했다. 내가 시험 삼아 그렸을 때 길이와 단추 위치 등을 디자이너가 몇 번씩 수정했다.
6. 여섯 번째 손길 – 내부 공사
연수 기간에 매장 내부 수리가 있었다. 행거를 다 치우고 페인트 칠을 하고 조명을 바꾸고 거울 위치를 바꾸는 등의 작업이 있었다. 공사를 집중적으로 하는 날은 영업을 하지 않았지만 나는 헬퍼로 일했다. 옷을 정리하고 물건을 치우는 등의 일이었다. Shop의 이미지가 바뀌고 분위기가 바뀌는 과정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공사 중에도 나는 바닥에 신문지를 깔아놓고 작업지시서를 작성하는 등 작업에 매진했다.
7. 일곱 번째 손길 – 패치 스커트와 머플러 제작
패치 스커트를 만드는 소재와 컬러 매치를 배우고 내가 디자인한 맞춤복 손님의 선물용 머플러를 직접 만들어 보기도 했다. .
8. 여덟 번째 손길 – 판매
판매가 가장 힘들었다. 어이없는 손님도 많고 사는 사람보다 구경하러 다니는 사람이 더 많았다. 내가 혼자 판 것은 세 벌 정도 된다. 옷 가격은 코트 58만원, 스커트와 팬츠 22만원, 블라우스 19만원이었고 맞춤의 경우는 비쌌다. 가격 책정은 총 비용의 2배에서 2.5배 정도로 책정했다. 질 좋은 옷을 만들되 옷 가격에 거품을 내지 않겠다는 디자이너의 신념의 존경스러웠다.
9. 아홉 번째 발길 – 디자이너들과의 회식
LAMB의 옷 디자이너 세 분과 액세서리 디자이너 한 분과 회식을 하게 되었는데, 디자이너의 생활과 다양한 가치관들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돈과 명예보다는 옷이 좋다는 꿈을 믿으며 사는 소박한 사람들이었다. 그 점이 매우 좋았고 자기 옷을 만들며 사는 디자이너들의 힘든 점도 알 수 있었다. 한 분의 옷은 편안하면서 멋스러워서 잘 팔리고 또 한 분의 옷은 여성스럽고 로맨틱하고 섹시해서 잘 팔렸다. 패턴 공부의 중요성을 실감할 수 있었다.
짧지만 길었던 2주 연수 기간 동안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책상에서 하는 디자인과 시장에서 하는 디자인의 차이를 안 것이 가장 큰 수확이랄까. 난 모르는 점도, 부족한 점도 많았다. 디자이너로써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만의 색깔을 찾는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어렴풋한 생각을 가질 수 있었다. 내 앞에 놓여진 과제들이 한없이 많아 보이는 지금, 나는 2주간의 연수를 터닝포인트로 더욱 섬세하고 자아의식이 강하고 인간적인 옷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감히 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