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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MOD NEWS

에스모드 서울에서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소식

INTERVIEW

디자이너 이상봉, 에스모드 베를린 졸업작품 심사위원으로 참가

  • 작성일2005.11.02
  • 조회수4662

얼마 전 베를린에 있는 에스모드에서 연락이 왔다. 졸업 작품전의 심사를 부탁하는 것이었다. 마침해외 시장 조사와 이번 가을에 있을 파리 전시 건으로 유럽 출장을 계획하고 있던 차에, 마다할 리 없었다. 게다가 베를린은 평소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도시였기에 반갑기까지 했다.

2주 동안 모스크바와 프라하, 그리고 베를린과 파리를 거쳐 서울로 돌아오겠다는 꽤 빠듯한 일정으로 유럽 출장 길에 오른 나는 일단 예정대로 모스크바와 프라하의 패션 산업을 둘러본 후, 이번 일정 중 가장 공적인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도시 베를린으로 향했다. 나와 같은 목적으로 베를린 에스모드에 집결한 심사위원단은 모두 20명 정도. 디자이너 마리테 프랑소아 저버 부부와 프랑스의 여러 디자이너들, 그리고 한국 디자이너로는 나 이상봉, 그리고 각국의 패션지 편집장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심사 방법이었다. 에스모드의 졸업생들은 자신들이 공부하고 실습하던 에스모드의 교실을 하루 만에 자기들의 두 평 남짓한 숍으로 변화시켰다. 숍으로 꾸며진 각각의 부스 안에는 최소 열다섯 벌 이상의 옷이 걸려 있었고, 가상의 브랜드를 만들어 꾸민 컵센트 숍은 전문가들의 전시회를 방불케 했다. 여기서 심사위원단이 체크해야 할 것은 그 숍에 걸려 있는 옷의 디자인만이 아니었다. 매장의 컨셉트나 포트폴리오까지 그 가상의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구성 요소들을 모두 평가해야만 했다.

심사위원들은 아침 9시부터 12시까지 심사를 하고, 딱 1시간 동안의 점심시간을 가진 후, 다시 1시부터 6시까지 심사를 해야 하는 매우 빡빡한 일정이었지만, 아이디어 넘치는 그들의 작품에 새로운 도전을 받아 힘들다는 생각을 할 여유조차 없었으며, 심지어 에너지를 충전 받는 기분마저 들었다. 그간 국내에서도 이런 콘테스트의 심사를 여러 번 해봤지만 이렇듯 졸업 작품전 심사에 열을 올리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었다. 나와 함 팀을 이룬 편집장 알렉산더는 긴 시간 동안 꼼꼼히 심사를 해서 함께 움직이려면 항상 내가 한참을 기다려야만 했었는데, 그런 그는 “나는 디자이너가 아니기 때문에 옷을 더 섬세하고 꼼꼼하게 심사할 수 밖에 없다”고 내게 말했다.

우리는 정확히 오후 6시까지 심사를 모두 마친 후, 밤 9시부터 시작될 졸업생들의 패션쇼를 관람하기 위해 또 바쁘게 자리를 옮겨야만 했다. 졸업생마다 1인당 2명만 초대할 수 있으며, 한화로 1만5천원 정도인 입장료(졸업 작품전에 입장료를 받는 것은 처음 봤다)를 내야 하는 패션쇼였음에도 불구하고(게다가 그날은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게 늘어선 관객들. 그리고 이들의 패션쇼를 취재하기 위해 찾아온 각종 패션지의 에디터와 포토그래퍼, 그리고 방송사 취재진으로 인해 인산인해를 이루었던 에스모드의 패션쇼는 이 베를린이라는 도시가 패션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를 가늠케 했고, 축제분위기가 물씬 풍겼던 이 패션쇼는 마침 다음날로 예정되어 있던 ‘베를린 패션 위크’의 시작을 예고하는 전야제 같은 느낌을 갖게 했다.

우리나라 학생들의 졸업 발표회를 자주 보았던 나로서는 그 상황에서 당연히 독일과 한국의 실정을 비교할 수밖에 없었고, 당장 전시회에 참가해서 옷을 판매하거나 패션쇼 무대에 서도 되겠다고 인정되는 학생들이 심지어 모든 패턴과 봉제까지 직접 담당햇다는 사실에, 그들의 능력을 높이 평가할 수 밖에 없었다. ‘디자인 감각과 꼼꼼한 손재주를 가진 것은 우리나라 학생들만이 아니구나. 베를린의 디자이너 지망생들 역시 옷뿐 아니라 패션이라는 메커니즘을 확실하게 이해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패션이 예술이냐 산업이냐를 논했던 과거와는 달리, 패션이 철저한 산업으로 발전하는 것을 8년 동안 계속해온 해외 전시를 통해 비로소 깨달았던 나. 나는 그 깨달음을 베를린 에스모드의 졸업생들에게서도 감지할 수 있었다.

패션쇼가 끝난 후, 심사위원들은 각자 선정한 최고의 학생들을 시상하며 “앞으로 독일의 패션을 변화시킬 주요 세대”라고 이들을 축복했다. 최근 유럽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디자이너들이 프랑스나 이탈리아, 영국, 그리고 벨기에 정도에 국한되어 있었지만, 나는 머지 않아 이 리스트에 독일도 추가될 수 있음을 조심스럽게 예측해본다.

(이 기사는 2005년 9월호 W지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http://www.wkorea.com/wstyle/focus/focus.asp?menu=03&ins_no=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