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슈즈 디자이너’ 이겸비가 말하는 ‘슈즈’에 관한 인터뷰
- 작성일2005.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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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구두에 열광하는 구두매니아 ‘슈어홀릭(shoeaholic)’열풍과 맞물려 최근 몇 년 사이 ‘최정인’, ‘더슈’, ‘수콤마보니’, ‘지미추’ 등 수제 구두숍과 해외 유명 제화 매장이 속속 문을 열기 시작했다.
1994년 에스모드 서울을 졸업한 후, 최근 슈즈 열풍이 불기 훨씬 전인 10년 전부터 유명 브랜드의 슈즈 디자이너로 활동해 온 이겸비 동문. 현재 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 슈즈를 디자인 하고 있는 이겸비 동문을 만나자마자 그녀가 어떤 신발을 신었는지부터 살폈다. 바이올렛과 핑크 벨벳구두에 진한 바이올렛 스타킹. 첫 눈에 봐도 범상치않은 패션 감각을 지닌, ‘슈즈 디자이너’가 말하는 ‘슈즈’에 관한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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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즈 디자이너로서의 경력
이신우 컬렉션에서 약 3년간 액세서리 부문 디자인을 담당하다가 빈치스 벤치와 오브제를 거쳐 쌈지의 니마(Nima)라는 슈즈 디자인 팀장으로 일했습니다. 그 당시 쌈지는 고급스런 분위기의 액세서리 라인을 강화하려는 전략을 갖고 있었고 저와 쌈지의 브랜드 컨셉이 잘 맞아 쌈지와는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신우, 루비나, 박윤정, 하상백, Y&K 의 컬렉션 슈즈도 담당했구요.
현재는 인사동 쌈지길에 있는 ‘겸비쌈지’ 의 신발을 독자적으로 디자인 하고 있구요. 동대문 뉴존에서 ‘교교’(‘달빛이 교교하게 흐른다’에서 유래한 말로, 이겸비 동문의 애칭이기도 하다)라는 이름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 미개척 분야에 대한 도전정신
제가 에스모드를 졸업할 1994년도 무렵부터 토털 액세서리 브랜드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의상 이외의 다른 패션 디자인이 그리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고 신발을 패션의 서브 개념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남들이 가지 않는 미개척 분야이기 때문에 신발에 대해 더욱 도전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 같아요. 대형 브랜드보다는 개인 부틱에서 컬렉션을 준비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구요. 그래서 이신우 컬렉션에 입사해서 모자, 가방, 다이어리 등 액세서리 부문을 맡았고, 그 중에서 신발 한 분야에 더 집중하게 되었죠.
이신우 컬렉션에서 제가 처음 디자인한 구두가 뾰족한 앞굽에 끈이 달린 리갈 스타일의 하이힐이었는데요. 졸업하고 나서 우연히 에스모드에서 저를 지도해주셨던 Eve 선생님을 만났는데 그 분이 제가 디자인한 구두를 신고 계신걸 보고 정말 뛸듯이 기뻤던 기억이 나네요.
■ 슈즈 디자이너. 우연 혹은 운명
슈즈 디자이너를 꿈꾸면서 에스모드에서 공부했던 건 아니었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슈즈 디자이너로 일하게 된 ‘암시’랄까 하는 일들이 학교 다니면서 꽤 있었던 것 같아요. 1학년 때 발과 슈즈 정밀묘사 시간이 있었는데 여러 종류의 신발을 너무 재미있게 그렸던 기억이 나네요. 또 ‘끄레아또레’에서 하기 기업연수 할 때 공교롭게도 구두를 그려서 맵에 붙이는 일을 담당했구요. 신발 제작 작업과 비슷하게 가죽 본딩으로 소재개발을 해서 졸업작품을 제작한 것도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운명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 구두, 유혹을 담는 스푼
바라보는 면에 따라 라인도 다르고, 앞, 뒤, 옆 모양이 모두 다른, ‘구두’라는 오브제가 주는 매력은 정말 대단해요. 하이힐이 갖는 유혹의 상징성과 에로틱함과 더불어 저는 구두를 ‘유혹을 담는 스푼’이라고 생각해요. 편안하고 튼튼하게 디자인 해서 거기에 저만의 색채를 담아 근사한 조형미와 색을 가진 신발을 디자인 하는 일, 그리고 그 신발을 아름답게 신고 만족해 하는 여성의 모습을 보는 건 정말 즐거운 일이죠.
■ 이겸비를 닮은 슈즈
제 디자인의 키워드는 ‘전통’, ‘미래주의’, ‘스포티함’의 세 단어로 정리될 수 있습니다. 한국 고유의 문양에서 느껴지는 강한 오리엔탈 느낌과 스포츠 용품이나 기계 부속품 등에서 따온 요소를 결합하는 믹스 앤 매치를 즐깁니다. 전 인사동 거리에서 디자인 구상을 잘 하는 편이예요. 도자기나 한지, 동양화, 도장, 장기알 등이 제 신발 디자인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기도 하구요. 인사동의 한 골동품 상에서 구입한 은구슬을 굽으로 사용한 구두도 있구요, 장기알 ‘포’자를 음각으로 파서 디자인 한 구두, 기와를 모티브로 한 구두 등이 모두 인사동에서 영감을 얻어서 디자인 하게 된 구두들입니다.
■ 이겸비의 멘토 ‘마놀로 블라닉’
파트릭 콕스, 로제 비비에, 세르지오 로시 등 훌륭한 슈즈 디자이너들이 많지만 저는 특히 마놀로 블라닉을 좋아해요. 뒤늦게 슈즈 디자이너가 되어 60세가 넘은 지금까지 섹시한 모던함과 클래식함을 갖춘 신발을 디자인할 수 있는 건 연극, 사진, 모델활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을 했던 마놀로 블라닉의 경력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열린 사고를 가지고 패션, 문화계와 다양한 교류를 하면서 자신의 분야에서 명성을 떨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 이겸비가 쓴 ‘슈즈’
5년 전에 남자친구와 헤어지면서 그 동안 미뤄왔던 신발에 대한 책을 쓰려고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7년 간 슈즈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느낀 것을 정리해보고 또 책을 쓰면서 모르는 분야를 배워보는 좋은 기회였던 것 같아요.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신발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고 슈즈 디자인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일부러 구어체로 설명하듯이 썼습니다. 세계의 명품신발, 신발 디자인 업계 소개, 슈즈 에로티시즘과 하이힐의 상징성, 구두의 종류와 손질요령, 슈즈 트렌드 및 추천 사이트 등 총 5파트로 나뉘어 있습니다.
■ 슈즈 디자이너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현재 국내에선 신발 디자이너를 양성하는 전문적인 교육기관이 없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현재 활동하고 있는 디자이너들도 그 출신이 매우 다양하구요. 그래서인지 디자이너들의 베이스에 따라 그 개성이 작품에 더욱 뚜렷이 드러나는 것 같아요. 순수미술을 전공했느냐, 금속공예를 공부했느냐, 제품 디자인을 공부한 사람이냐에 따라 소재며 디자인이 확연히 다릅니다.
에스모드 서울에서 3년간 의상에 대한 기본기를 갖춘 저는 남들보다 패션전반에 관해 폭넓게 이해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재창조 하는 어레인지 능력이 뛰어난 것 같아요. 구두에 대한 인식이 점차 ‘패션을 완성하는 중요한 아이템’으로 변해가고 있기 때문에 다른 분야보다 패션을 공부한 사람이 신발 디자이너로 더욱 각광받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일단은 패션에 대한 기본 베이스를 탄탄히 다지고, 문화 전반에 대해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패션과 디자인에 대한 나만의 독창적인 시각과 명품이라고 불리는 것들에 대한 변별력도 가질 수 있을 거예요.
■ 향후계획
최근에 ‘이홍겸비’ 란 이름으로 사업자등록을 마치고 새로운 구두를 디자인 하고 있는 중입니다. 현재 운영중인 ‘교교’와 ‘겸비쌈지’의 디자인도 계속 할 거구요. 하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신발 뿐만 아니라 여러 영역을 넘나드는 전시와 이벤트 등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계획입니다. 내년쯤 신발에 관한 두 번째 책이 출간될 예정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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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 넘게 슈즈 디자인을 해온 그녀는 과연 몇 켤레의 구두를 가지고 있을까? 이겸비 동문이 지금까지 사 모은, 혹은 자신이 디자인한 소장용 신발은 무려 100여 켤레. 신발 박스에 폴라로이드 사진을 붙여놓고 보관하지 않으면 일일이 찾아 신기도 어려울 정도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100 켤레가 넘는 신발 중에서 그 흔한 검정색 구두는 한 켤레도 없다고 한다.
톡톡 튀는 그녀의 신발 만큼이나 개성이 넘치는 이겸비 동문.
그녀가 디자인한 신발, 일러스트, 전시작품, 사진 등은 디자인 정글에서 추천 사이트로 선정되기도 한 이겸비 동문의 홈페이지(www.kyumbie.com)에서 볼 수 있다.
